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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작곡가 최지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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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나윤 작성일21-01-08 01:42 조회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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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최지혜

 

 

 

 

여기 11월을 무척 바쁘게 지내는 작곡자가 있다. 오는 11월 1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 극장에서 <월드오케스트라Ⅱ 위로>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안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59회 정기연주회의 마지막곡인 ‘바이올린과 인도 따블라를 위한 국악관현악 협주곡 위로‘ 와 11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의 “2020 마스터피스: 정치용“ 의 첫 곡인 국악관현악곡 ’강. 감정의집‘, 11월 27,28일 행주아트홀에서 열리는 희원극단의 뮤지컬 ’visit‘ 의 최지혜 작곡가를 만나봤다.

Q무척 바쁜 11월이 되시겠네요. 이 곡들을 다 작곡하느라 힘드셨을텐데요.

A위의 곡들은 모두 이미 작곡한 곡들입니다. 하지만 이번 11월 공연에 임하면서 수정을 좀 하였습니다. ‘바이올린과 인도 따블라를 위한 협주곡 ’위로‘는 2016년 안산시립국악단의 임상규 지휘자님과 ’오작교프로젝트(오케스트라와 작곡가의 교류)를 진행하면서 썼던 곡이구요 국악관현악곡 ‘감정의 집’ 은 국립극장 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상주작곡가를 지내면서 작업한 곡입니다. 희원극단의 뮤지컬 ’visit‘는 제가 공식적으로 쓴 첫 뮤지컬 작품인데 이번에 7년만에 재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게 초연작이 마지막작 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힘들게 작업한 곡들이 다시 연주되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많은 작품들 가운데 특별히 국악기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저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구 서울국악예술고) 의 1기 작곡전공 졸업생이예요. 그전에는 작곡전공이 없었다고해요. 아무래도 한국의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학교다보니 모든 곡들을 국악기 위주로 배우고 쓰게 되었지요. 어릴 때는 클래식음악을 했었구요. 아버지가 성악을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 하셨어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어요. 중학교때 채플 반주자였는데 교목실 목사님께서 어느 날 부르셔서 지혜는 피아노도 잘치고 장구도 잘치니 국악학교에 진학해보면 어떻겠니? 라고 조언해주셨고 마침 국악예술고 언니오빠들이 학교를 홍보하러 와서 사물놀이도 연주하고 악기연주도 선보였는데 기독교학교에서의 홍보라서 그랬는지 ‘Amazing Grace’를 국악기로 연주하는거예요. 그 때 저 학교에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국악기로 찬송가를 연주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인문계로 원서를 써놓고 예고로 바꾸겠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지요. 그래서 들어간 학교가 우리나라 전통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수 많은 명인들을 배출해낸 엄청난 학교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Q음악선교사를 꿈꾼적도 있었다구요? 그래서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쟝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건가요?

A어릴 적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에 관해 고민이 많았어요. 아버지가 삼익악기본사에 계셨었고 어머니는 피아노학원 원장님이셨어요. 지금은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 많치만 예전에는 동네에 몇 개 없었는데 어머니의 학원은 항상 아이들이 많았어요. 저는 거기서 엄마 주위를 맴도는 원장선생님 딸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늘 바쁘신 부모님 사이에서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선교사가 되면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연하게도 언젠가는 꼭 작곡가가 되고 싶다 라는 생각 또한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영향이 아무래도 컸지요. 너는 손가락이 짧으니 작곡을 전공하면 좋겠다 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CCM은 국악인 바닥소리 대표 최용석 선배의 권유로 CCM가수 조수아씨의 4집 앨범에 ‘오라’라는 곡을 쓰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용석선배가 내 아내가 될 사람인데 지혜가 국악스타일의 곡을 써주면 좋겠다고 했고 찬송가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의 가사로 곡을 써달라셨지요. 이 곡을 CCM가수 송정미씨가 들으시고 어느 가을날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같이 작업하고 싶으니 사무실에서 만나자고요.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의 전통음악과 기독교음악의

아름다운 협력과 섞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구요, 그 후 송미니스트리의 수많은 공연에 음악감독과 편곡을 맡았고 정미언니의 6집 국악앨범 ‘희망가’(2010) 를 프로듀서했으며 2015년에는 송정미 카네기홀 콘서트에 건반과 편곡으로 참여하면서 그 큰 홀에 태극기를 띄워놓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수석단원분들과 함께 수많은 곡들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왔습니다.

송정미씨의 나라사랑 국악사랑을 흠뻑 느낀 공연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Q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작곡가를 지내셨다 들었어요, 2009년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오마주 투 코리아’ 의 곡을 편곡하셨다구요?

A네, 예전에 비해 요즘은 한국의 작곡가들에게 여러 작품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 같은데 특별히 상주작곡가라는 제도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 몇 개의 단체에 있어요. 저는 운이 좋게도 국립국악관현악단에 2대 상주작곡가에 위촉을 받아 곡을 쓸 수 있었어요. 이번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번째 순서의 곡으로 올려지는 관현악곡 ‘강. 감정의 집’ 이라는 곡도 이 때 작업한 곡입니다. 오마주 투 코리아는 미국의 Bennett 작곡가가 ‘아리랑’을 편곡했고 저는 국악기를 편곡했어요. 김연아선수의 코치가 그 곡에 반해 사용하였다고 하더라구요. 당시 비와 송혜교씨가 나와 큰 히트를 쳤던 TV드라마 ‘풀하우스’를 만든 제작사에서 저와 베넷작곡가를 위촉해서 작업하게 된 것이었거든요. 그 때는 공연용으로 작업한 곡이었는데 이곡이 이렇게도 쓰여질 수 있구나 란 생각에 기분이 참 묘했어요.

Q한국에서 여성작곡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여쭤봅니다.

A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텅빈 종이와의 씨름을 마주하고 삽니다. 마감날짜가 있기에 무엇으로든 채워야 한다는 고통 또한 크구요. 성실하지 못하면 이후 다시 수정해야하는 수고로움을 겪게 됩니다.  2.30대는 밤을 자주 세면서 곡을 썼었어도 지칠줄 몰랐습니다. 40대 중반이 되니 확실히 체력이 따라주질 않는 것 같아요. 10살된 아들과 7살 딸이 있는데 아직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거든요. 친정어머니가 진심을 다해 도와주시지만 엄마로써 제가 해내야 할 육아와 가사의 몫이 있으니 제가 하고 싶은 창작을 욕심껏 모두 다해내는 것은 불가능해요. 감사하게도 위촉을 계속 받는 편인데 모두 다 해낼 자신이 없어 정중히 거절하는 일도 많아요. 진심으로 음악을 향한 애정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최지혜 1976년 서울출생. 중앙대 음악대학 한국음악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10년간 작곡과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2017.18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상주작곡가 (위촉)를 지냈으며 관현악곡 부문에서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중앙대학교와 숭실대학교에 출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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